김숙경 / 듀폰 코리아 상무
김숙경 상무님, 임원이 되는 데 주요하게 영향을 끼친 커리어를 중심으로 얘기를 해 주시겠어요?
저는 듀폰이 첫 직장이에요. 처음 듀폰에 와서 무역 쪽 CSR(고객서비스업무)를 한 6년 정도 했고요. 89년도에 홍보부가 생기면서 홍보부로 옮겨와서 13년 정도는 제품 홍보, 주로 광고, 세미나, 전시회, 프로모션행사, 시장조사 등의 업무를 했어요. 2002년부터 10년 가까이는 기업 홍보, 주로 미디어를 통해 회사의 주요 메세지를 홍보하고, 위기나 이슈관리, 직원들과의 소통,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활동 등을 했어요. 처음에 CSR 업무를 할 때는 무역 업무, 산업정보, 비즈니스 업무 전반을 이해하게 되었고, 홍보 업무는 우리 제품이 시장에서 어떻게 판매되는지 마케팅에 대해 배우고, 고객사들과 광고대행사 들과 일하면서 파트너십을 배웠어요. 조금 더 커리어를 높이기 위해서 기업 홍보 쪽으로 와서 기업의 명성 관리, 회사를 대표하는 업무, 비즈니스 리더들과 회사의 전반적인 전략이나 방향에 맞추어 일하면서 책임감이 그만큼 더 넓어진 것 같아요.기업홍보를 처음 하실 때 직급이 부장님이시고, 사장님께 직접 보고 하셨다는데, 역활을 키워가면서 임원이 되신 거네요.
예, 그렇죠. 회사내의 홍보의 기능과 역활, 조직을 그만큼 더 키운거죠. 임원이 되기 위해서는 현 업무를 잘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조직이 회사에 얼마나 공헌하는지, 제대로 역활을 하는지 살펴보고, 조직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비즈니스 리더들에게 어떻게 어필하셨어요?
같이 일해보지 않으면 그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르죠. 자신의 업무 외에 회사의 다른 여러가지 활동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 회사에는 여러 가지 위원회(committee)가 있어요. 그 중 안전 위원회(safety committee)와, 우먼네트워크(DWN)의 리더를 했습니다. 안전위원회 리더로서는 전사적인 관점에서 우리 직원들의 안전에 대한 의식고취와 안전사고 예방에 관하여 여러 사업부와 지원부서에서 온 10명 정도의 직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리더십도 많이 개발되었고, 회사 전체에 영향력을 끼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임원진들에게 발표하고 지원을 얻어내면서 자신을 많이 알릴 수 있었죠. DWN 리더일 때는 임원진 회의에 멤버로서 참여했어요. 부장이었지만, 12명 정도로 구성된 회사 임원진 회의에 정기적으로 참여하여 회사의 전반적인 상황도 듣고, DWN 활동도 보고하고, 또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이나 스태핑 과정에서 임원진들의 생각을 보고 배울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후배들한테도 내 부서 일만 하지 말고 전사적인 프로그램들, 위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또 리더가 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대외적인 네트워크나 사회적인 활동들은 어떻게 하셨나요?
차/부장시절, 네트워크가 약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남자들은 다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들이 모든 기업에서 일하고 있지만, 저 처럼 여자대학을 나온 사람은 친구들이 기업에서 특히 한국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들이 없었죠.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여성들이 항상 네트워크가 약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녁에 네트워크를 쌓기보다는 집에 가서 아이들 돌봐야 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죠. 하지만 일에 관련된 꼭 필요한 네트워크는 일을 통해 만들어 갔고, 모임이나 교육도 가죠.초조하지는 않으셨어요? 주변의 성장에 비해서 내가 좀 정체되거나 도태될 수도 있잖아요?
초조한 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남자들이랑 비교하면 내가 뒤쳐진 것 같고, 억울한 느낌은 있었지만, 저희가 여자로서는 ‘최초’라는 수식어를 늘 갖고 있었으니까요. 항상 롤 모델이 되어야한다는 부담감은 가지고 있었죠. 커리어가 정체된 것 같아 힘들었을 때도 있었죠. 그러나 저는 일을 시작할 때도 일을 굉장히 ‘롱 텀’으로 할 거라고 봤거든요. 시기적으로 2-3년 늦어졌다고 해서 계속 늦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너무 힘들게 하다가 다 소진되어서 되려 자기의 건강이 나빠진다거나 가정이 안 좋아진다거나 이런 것보다는 지금 내가 어디에 시간을 쏟아야 될 때인가를 생각하면서 욕심을 좀 버리고 조금 늦게 가자 하는 거죠. 조금 늦었다고 계속 늦는 거는 아니니까요.임원이 되는 과정에서 나의 어떤 성향이 리더가 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일단 가장 큰 건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죠. 저는 직급이니 이런 것보다는 ‘프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커리어의 목표로 삼았어요. ‘이 사람이 여기에 대해서는 전문가다’ 그런 평가를 일단은 먼저 받아야 될 것 같고요. 거기에 많든 적든 간에 팀원들을 얼만큼 잘 이끌어가고 키워 갈 수 있는가, 회사에 대한 이해나 다른 부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유연성을 가지고 협력해서 일할 수 있는가 그것도 중요한 요소였던 것 같아요.이직을 고민해 보신 적은 없으세요?
2번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인터뷰도 해 본 적 있고요. 그런데 이직을 하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어쨌든 일의 내용이나 패턴이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대부분 홍보 쪽 구조가 비슷했던 것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 봤을 때 특별히 여기보다 매력적인 요소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임원이 되는 과정에서 나의 어떤 성향이 리더가 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일단 가장 큰 건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죠. 저는 직급이니 이런 것보다는 ‘프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커리어의 목표로 삼았어요. ‘이 사람이 여기에 대해서는 전문가다’ 그런 평가를 일단은 먼저 받아야 될 것 같고요. 거기에 많든 적든 간에 팀원들을 얼만큼 잘 이끌어가고 키워 갈 수 있는가, 회사에 대한 이해나 다른 부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유연성을 가지고 협력해서 일할 수 있는가 그것도 중요한 요소였던 것 같아요.이직을 고민해 보신 적은 없으세요?
2번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인터뷰도 해 본 적 있고요. 그런데 이직을 하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어쨌든 일의 내용이나 패턴이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대부분 홍보 쪽 구조가 비슷했던 것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 봤을 때 특별히 여기보다 매력적인 요소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상사와 지금까지 일해 오시는 과정에서 불편하신 적이나 갈등을 일으키신 적이 있으셨는지?
제 보스가 외국에 있어서 한국에서 제가 차장 레벨에서 부사장님한테 리포트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아무래도 외국에 있는 상사가 여기 있는 일을 잘 모르죠. 그때 커뮤니케이션이 충분치 못해서 일 자체가 축소되면서 조직이 없어지느냐 마느냐 그런 상황이 있었어요. 그런 경우를 겪고 나니까 ‘참 내가 커뮤니케이션을 잘 못했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거죠. 부사장님께 매일 인사 드리러 가는 일이나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알려드리는 일이 편안하지 않아서 게을리 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충분히 윗사람들한테 커뮤니케이션을 했어야 되는데. 그리고 외국에 있는 안 보이는 상사들한테도 충분히 커뮤니케이션을 해서 내가 조직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라고 생각했어요.의식적으로 노력을 하셨다는 거죠?
예. 그런 시스템이 따로 있거나 요구를 한 것은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 매트릭스를 만들어서 2주에 한 번씩은 일과 관련해 계속 리포트를 보낸다거나 했죠.가정과 병행하는 문제에서 어려웠던 적은 언제였나요?
아이들 때문에 생각이 많았죠. 어렸을 때, 학교 다닐때, 늘 고민 했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아이들 조기교육에 욕심 생길 때,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가 산만하다고 할 때, 성적표를 받아 볼 때, 아이가 아토피로 고생할 때,.. 항상 고민했죠.아이가 나 때문에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가 있었나요?
지금도 미안하죠. 제가 큰아이 어릴 때, 조기교육에 욕심이 많았어요. 유치원 끝나면 스포츠센터에 저녁에 바이올린 레슨에, 그리고 제가 퇴근 후에는 30분 단위로 눈높이 수학, 국어, 영어 줄줄이 시키고. 제 기대치에 못미친다고 야단치고… 정말 나쁜 엄마였죠. 지금 제가 생각해도 숨이 막히는데, 왜 그때 그랬는지… 아이가 자신감이 없어 보이면 지금도 어려서부터 자존감을 세워주지 못한 내 잘못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프죠.그 과정을 겪고 있는 멘티들한테 해 주고 싶으신 말씀은?
그것이 진짜 아이한테 필요했던 건지 아닌 건지를 봤어야 되는데, 내 욕심에 많이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경우는 사실은 오래 가지 못하기 때문에 되려 아이한테 더 많은 상처를 준다고 생각해요. 요즈음 멘티들을 만나보면 훨씬 현명하더라구요. 아이에 대한 교육원칙을 가지고 있고, 아이들의 의견을 많이 존중하는 것 같아요. 나처럼 내욕심대로 아이를 만들려고 하지 않으면 돼요.(웃음)자녀문제에 대해서 지금은 많이 여유로워지셨나요? 자녀교육에 대한 생각이 어떠신가요?
아이들이 사춘기에 오면서 전업 주부들도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막 갈등이 있을 때 너무 엄마 것을 요구하면 되려 사이가 완전히 남남이 되는 거고, 차라리 엄마가 빨리 포기하면 그래도 관계는 계속 간다고요. 저는 기본적으로 엄마, 아빠가 생활하는 모습,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활하는 모습, 이런 것을 다 보고 있기 때문에 아이가 잘 못 나가거나 그렇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은 있어요. 또 아이들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이 아이들은 20년 후, 30년 후 내가 살아보지 못할 세상을 살아갈 애들이기 때문에 가치관도 다를 수 있고 많이 다를 수 밖에 없어요. 가장 기본적인 것들, 신앙이나 정직하고 성실하고 그런 기본적인 가치만 지켜져 나간다면 어떤 다른 모습도 전혀 문제될 것은 없다고 봐요.나만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있으세요? 아까 유연성 얘기는 하셨는데…
저는 가능한 모든 걸 오픈해서 얘기하는 타입이에요. 전체적으로 다 얘기를 하고 소통을 하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어느 정도 다 전달되는 것 같아요. 오픈을 하면 왜곡되거나 잘못되거나 그런 것들은 거의 없고, 요새 말로 진정성이 통한다고 생각해요.남자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의 어려움이 있으셨던 적 있으신가요?
예전에 나는 시니어 차장이었고 남자 직원이 과장이었을 때였어요. 별로 차이가 안 나는데, 저한테, 여자에게 리포트를 해야 되고, 점검 받아야야 된다는 것 자체를 수용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어떤 얘기를 하는데, “그건 제 잡 스콥(scope)이 아닙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우리가 일을 하다 보면 사소하고 자잘한 게 많잖아요. 모든 일이 직무표 (job description)에 써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표나지 않지만, 귀찮지만 결국 해야 되는 일이고, 또 결과를 좋게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데. 그래서 솔직하게 다 이야기하고, 또 그 사람이 발전해야 될 것들을 계속 이야기해주고, 또 이야기해 주었죠. 시간이 필요한 일하고, 아주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세요? 여성, 남성의 문제는 아닐지라도 방식이나 기술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실제로 보면 커뮤니케이션 할 때 그 내용 때문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에요. 내용 때문에 부딪히기보다는 전달하는 방식과 사람의 태도 이런 것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만약에 여러 부서에 제안할 게 있으면 사전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들한테 미리 가서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의견을 구하는 것이 필요해요. ‘큰 틀은 안 바뀌어도 그런 내용을 반영해 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사전에 조금 조율을 하고 진행하면, 본인들이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분들이 서포트를 하더라고요. 부서에서 일을 할 때도 일의 목적, 그리고 같이 성과를 만들어내며, 도움을 주는 것이 목적이다 라는 것을 충분히 전달해야 하죠. 그러니까 말하는 태도와 방식이 내용보다도 더 영향을 끼치더라고요.어떤 리더셨어요? 매니저와 리더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더구나 임원 정도 되면 매니저적인 측면이 아니라 어떤 리더가 돼야 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더라고요.
일단은 매니저라고 하면 조금 더 성과 관리 쪽에 비중을 두는 것 같아요. 리더의 경우는 우리 조직의 영향력을 키우는 것하고, 직원들 역량개발에 더 많이 신경을 써야 될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포용하는 리더십인데요. 그냥 믿고 기다려주는 것도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최적의, 가장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더 많이 도와주고 이래야 될 것도 있지만, 어느 경우는 부족한 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사실은 필요해요. 더 들어가서 조금 더 도와줄까? 하다가도 조금 놔두는 것이죠. 그런 것을 참는 게 어떻게 보면 더 어렵고 더 중요해요.사실 아웃풋이 마음에 안 들게 나올 수가 있잖아요.
물론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이렇게 할 수 있었겠지’ 라는 생각은 드는데, 그렇게 했을 때는 본인이 한 게 아닌 게 되 버려요. 직원들이 자기가 막 안을 만들어 가지고 신나서 갖고 왔는데, 거기다 대고 이런 이런 거는 더 해봐 이렇게 얘기를 하다 보면 그 다음부터는 일을 지시한 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더라고요. 그러면 벌써 열정이 팍 떨어져서 결코 더 좋은 성과가 나지 않아요. 차라리 조금 부족한 것 같아도 스스로 하게끔 놔두면 되려 더 적극적으로 오너십을 가지고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부족해도 그냥 받아들여주는 거, 기다려주는 거 그것이 필요할 것 같더라고요. 그게 되려 더 힘들어요.기다린다고 하는 게 참 힘든 건데, 그것을 위해서 노력하시는 부분이 있으세요?
그렇게 하려면 일단은 마인드 자체를 바꾸는 게 필요해요. ‘잘 할 것이다’ 라는 믿음을 갖고, 그 다음에는 ‘내가 다 아는 게 아니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되죠.아아까 시부모님을 모시고 계시다고 하셨는데, 일과 가정, 시부모님까지 모시는 상황에서 나에 대한 어떤 성찰, 나를 위한 시간을 갖기가 힘드셨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저는 휴가를 내고 혼자 시간을 갖는 것을 잘했어요. 휴가 내고 출근하는 것처럼 나오죠. 어떤 때는 친정으로 가서 하루 종일 쉬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나가서 영화 보고, 박물관을 혼자 가든지 하죠. 혼자 즐기는 것을 중간 중간에 하고 나면 그 하루가 너무 좋고 충전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계속 애들 초등학교 때, 중학교, 고등학교 때 나 나름대로의 시간을 갖도록 노력했던 것 같아요.시부모님과의 갈등이나 이런 부분들은요? 어떤 분은 “시부모님 어떻게 모시고 살았어요?” 여쭈었더니 그게 아니고 시부모님이 본인을 모시고 살았다고 얘기하더라고요.
맞아요. 우리 시부모님도 아마 그렇게 하셨을 거예요. 왜냐면 어머님이 젊으시기 때문에 살림도 거의 많이 하셨거든요. 그래서 저희 친정 아버지가 그랬어요. “네가 회사 나가서 돈 번다고 해서 네가 다 버는 게 아니다. 너는 반을 벌고 반은 너희 시어머니가 버는 거다.” 이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맞아. 공동으로 버는 거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물론 갈등도 있죠. 그런데 사소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가면서 점점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이사님께 한마디로 일이란 무엇이었나요?
일은 저한테 삶이고 생활이죠. 거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생활이라는 얘기는 그만큼 저한테 경제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었어요. 일을 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에서 저는 당연히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대학 다닐 때 ‘너는 굉장히 사회적으로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때 당시에 대학을 다닐 수 있는 것은 어쨌든 부모나 선생님이나 사회로부터 굉장히 혜택을 받은 것이고, 그래서 그것을 사회에 환원해야 된다라는 책임감 같은 것이 많이 있었어요. 학교에서 그런 롤 모델도 많았고요. 그래서 나는 일을 하는 게 내가 여태까지 배운 것에 대해서, 나를 도와줬던 사회에 대해서 내가 해야 될 일이다라는 생각을 가졌고요. 그래서 일 자체가 하나의 삶이고, 자아실현이고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해요.많이 바쁘고 힘드실텐테, 임원으로서 행복하세요?
예, 바쁘죠. 그런데 바쁜 게 어떤 때는 감사하기도 해요. 행복하다 안 하다를 떠나서 일도 하고, 어느 정도 개인적으로도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좀 더 있거든요. 제가 한 4년 전부터 많이 좀 바뀌었는데 내가 왜 회사 생활을 하지? 내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는 내가 막 ‘나를 알아달라. 나 빨리 올려달라’ 그런 게 목표였다면, 이제는 조금 더 돌아보게 되면서 우리 후배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도와줄까 생각하게 돼요. 한 10년 정도는 그렇게 일하고 있는 직원들을 도와주면서 같이 일하면 그게 더 보람이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마음이 바뀌니까 회사 나오는 게 감사하기도 해요.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으면 나중에 우리 딸도 더 나아지지 않을까 이런 마음도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