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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의 톡톡

위기는 기회다, “Why not?”

윤경혜 / 허스트 중앙 대표

윤경혜 대표님께서 지금의 이 위치에 있게 된 가장 영향을 끼친 경력 내지는 사건은 어떤 건지?

잡지기자로 일하면서 가장 큰 꿈은 잡지의 꽃, 편집장이 되는 거에요. 저는 잡지사에 오래 있었고, 기자 경력도 오래지만 편집장이란 타이틀을 처음 단 게 <코스모폴리탄> 잡지니까 코스모폴리탄 편집장이 된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경력이 되겠지요. 편집장이 되는 과정이 우여곡절도 많았고 큰 위기이자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과정이 어땠는지 얘기 좀 해주세요.

사실 저는 처음 기자가 될 때부터 뭔가를 일사천리로 해내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처음 중앙일보에 기자가 됐을 때도 재수해서 들어갔고 수습시절엔 선배들한테 기사 좀 잘 써보라고 많이 혼도 나고 그랬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좀 잘하게 된 게 요리기자를 할 때 였어요. 요리기자는 요리 촬영을 섭외하고 제가 진행을 해서 글 쓰고 하는 건데, 처음엔 그 일도 잘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잘한 것을 카피하면 잘하게 된다 해서 다른 잡지도 많이 보고 그랬죠. 잘 못하니까 다른 사람보다 일하는 데 시간도 배로 걸리는 거예요. 참 고맙게도 동료들이나 선배 사진기자들이 이해를 해 줘서 늦게 까지 남아서 촬영하고, 그런 일들을 여러 번 했어요. 그런데 자꾸 그렇게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에는 좀 잘하게 된 거에요. 예를 들어서 제가 그런 소리도 들었죠. “요리는 윤경혜를 따라서 하라”’고.

남이 1을 한다면 나는 1.5배의 노력을 했다고 볼 수가 있네요?

그렇죠. 약간 무식하게 시간도 몇 배로 더 걸리게 찍고, 준비물도 제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많이 구하고, 다른 사람 잘한 거나 샘플 같은 거 많이 보고, 나도 이렇게 해야 되겠다 이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에는 “윤경혜처럼 좀 해 와봐” 이런 소리를 듣게 된 거죠. 다른 동료들 통해 들은 최초의 칭찬이었을 거예요. 그것이 제가 약간 자신감이 생긴 하나의 계기였던 것 같아요. 언젠가 저를 면담하시는 국장님이 ‘여러 잡지에서 너를 데리고 가고 싶어했다’고 말씀하시면서 ‘모험을 좀 해보라’고 어느 한 곳을 추천해 주셨는데, 제가 그때 별로 도전과 변화를 안 좋아해서 안 가겠다고 했어요.

좀 아쉬웠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그런 선택이 결국 훗날에 저의 커리어에도 영향을 주게 될 줄은 몰랐지요. 그 당시 일하던 잡지에는 제 또래가 바글바글 모여서 일을 하는 팀이었어요. 제가 그 당시 차장이었는데, 여기 있으면 어떤 잡지에서든 편집장이 되겠거니 하고 야무지게 생각하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회사에서 그 다음 편집장 자리에 제 밑에 있는 후배를 발탁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놀랐죠. 사람들이 그러면 ‘쟤는 어떻게 되는 거지?’말들이 오갔고, 저 역시도 ‘회사를 그만두라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어요.



“무조건 잡지를 성공시키든지 아니면 집에 가라”

그게 몇 년도였어요?

그게 98년 초예요. 신매체 TF팀으로 옮겼어요. 6 개월 정도 잡지를 만들지 않았죠. 다음에 창간할 잡지를 연구하는 게 제 일이었는데, 제가 잡지 기자를 하던 사람이지 연구를 하던 사람이 아니어서 계속 보고서를 만들어 냈는데도 낸 것마다 ‘안 된다’는 답만 돌아왔어요.

위기였네요?

예. 그런데 그 즈음 <여성중앙>을 다시 복간하게 되어서 제가 팀장으로 갔는데, 그 때도 직위가 편집장이 아니었어요. 저는 굳이 말하자면 부편집장 정도였어요. <여성중앙>에서 또 열정적으로 일을 했어요. 잡지를 만드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나름대로 저희 회사 안에서는 굉장히 성공 케이스에 론칭을 했어요. 그때 이러저러한 시도를 했던 것이 많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제가 잡지 만들고 데스크 보는 거 외에 ‘독자들한테 어떤 혜택을 줄까’ 이런 것에 관심이 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선물 주고 하는 프로모션도 막 걸고, 제가 기자였는데 그런 걸 좀 좋아했어요. 그 잡지가 또 한 1년 반쯤 돼서 안정이 돼서 제가 그때 대학원을 가려고 준비까지 다 했을 때에요. 갑자기 중앙 M&B 대표님이 불러서 <코스모폴리탄> 창간 얘기를 하는 거예요. ‘편집장 인터뷰에 한 번 응해 보겠냐?’ 면서. ‘우리그룹에서는 처음으로 외국 타이틀 잡지를 하는데, 나가서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서 해야 되는데, 그것을 네가 해보겠느냐?’는 거에요. 저에게는 굉장히 도전적인 상황이 된 거에요. 왜냐면 <여성중앙>이 안정 궤도에 들어서서 이제부터 대접도 받을 수 있고, 창간으로 인해 휴학했던 대학원도 다시 다니기 시작했고, 여러모로 안정적인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거든요. 회사 안에서도 반대하는 분들이 많았죠. 왜냐면 <코스모폴리탄> 이 성공적으로 론칭안 될 경우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큰 이유였죠. ‘이 잡지는 새로운 독립법인에서 만드니까 알아서 잘 만들어서 회사를 살리든지 아니면 집으로 가야 할것이다.’ 그 소리가 귓가에서 계속 맴돌았어요.

정말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예, 회사 내에 있는 선배, 밖에 아는 변호사, 취재하면서 알게 된 사람, 그리고 외국에 특파원 나가 있던 동기 등 다섯 명 정도의 지인에게 물어봤어요. 대부분 사람들이 다 “why not?” 이라는 거예요. 언제 그런 기회가 또 있을 거라고 그거를 마다하느냐? 그러면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그게 저의 동기 특파원이 얘기해 준 거예요. ‘이제 글로벌 시대인데’ 그때가 딱 2000년이니까요. ‘당연히 코스모폴리탄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그 때가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터닝포인트였죠.

<코스모폴리탄>을, 허스트중앙을 선택할 때 본인이 판단했던 가치는 어떤 거였죠?

이런 잡지 한 번 해 볼까 하는 도전? <코스모폴리탄>이라는 매체가 시장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말한 그런 주제들이 좀 많이 나오는 잡지라. 그리고 또 편집장이 되는 거잖아요. 그것은 저한테 또 하나의 큰 기회잖아요. 도전도 되지만 기회죠. 게다가 왠지 영어잡지라서 미국하고 같이 합작이라니까 그 생각도 살짝 했어요. 미국은 어떻게 잡지를 만드나? 제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퍼블리싱 회사에서 계속 일을 했으니까요. 저희 중앙이 잡지사관학교 소리 듣는 그런 데니까, 그런데 ‘여기는 어떨까?’ 하는 생각도 컸죠.

<코스모폴리탄>에 와서는 어떠셨어요?

'코스모폴리탄'에 와서 제가 '여성중앙'때 조금 실험했던 ‘잡지를 더 많은 사람들이 집게 만드는 프로모션 이벤트’ 를 여기에 와서 정말로 여한이 없이 많이 해봤어요. 그래서 윗분들한테 그런 얘기를 들었죠. ‘쟤가 기자할 때 그렇게 능력이 뛰어난 애는 아니었는데, 팀장, 편집장으로는 자질이 좀 있는 애였구나’ 처음에 약간 걱정하시던 분들도 몇 권 만든 다음에는 저를 격려를 많이 해 주셨어요. 이 잡지가 또 컨셉이 살짝 수위가 왔다 갔다 하는 거라서 그것 때문에 제가 마케팅에 대한 신경을 더 쓰게 된 것 같아요. 한 1~2년은 퇴근도 보통 12시 전에 한 적이 없고, 개인생활이 거의 없었어요. 정말 제가 생각해도 지겨울 정도로 온갖 잡지를 다 보고, 다른 잡지는 뭘 했나, 광고팀이 나갔다 오면 저한테 항상 얘기하라고 하고, 퇴근을 맨날 광고팀하고 같이 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피드백이 점점 오는 거에요. 왜냐면 그때만 해도 잡지들이 마케팅을 많이 안 하던 때예요. 그러니까 남들이 안 할 때 제가 조금 한 게 굉장히 효과를 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어떤 마케팅 시도를 하셨나요?

독자들 불러다가 무슨, 무슨 교실하고, 이런 거를 저희가 제일 많이 했거든요. 그리고 세일 절대로 안 하는 수입 화장품 브랜드의 할인 쿠폰을 붙인다거나 이런 것을 시도를 많이 해 봤어요. 그런 것들을 많이 하다 보니까 점점 사람들하고 더 친해지고 그때는 과장이었던 사람이 이사가 됐고, 같이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동지들이 된 거죠.



“내가 다 잘한 게 아닐 수 있겠다”

잠깐 돌아가볼까요? 그때 어떻게 견뎌냈어요? 앞에 한 6개월간 잡지를 안 만들었던 기간이나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해 나가는 그 실험 때 마음들…

처음에 한 1주일에서 열흘은 회사 출근하는데 너무 창피한 거예요. 내가 ‘너 이거 해’ 이랬던 후배가 편집장 되고 저는 옆에 이렇게 한직으로 물러나 있으니까 정말 회사를 가는 게 너무나 싫고 괴롭고 그랬어요. 그나마 찾은 돌파구가 대학원이었죠. 또 하나는 가족들이 위안이 많이 됐어요.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주제로 가족회의를 했는데 저희 오빠가 이러더군요. ‘네가 10년을 다녔으니까 한 가지 직업으로는 꽤 다녔다. 그래서 나는 네가 만약에 그만두겠다고 하면 네 뜻을 존중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말을 딱 듣고 나니까 겁이 나는 거예요. 오빠의 진정 어린 그 소리가 저한테는 저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 거죠.

그랬을 때 견디겠다고 결정을 내린 거네요?

그렇죠. 왜냐면 잡지는 내가 정말 좋아하니까요 재미있고요. 그 앞의 많은 잡지 하면서도 이러저러한 에피소드가 많고, 버벅거리긴 했지만 한창 제가 물 올라서 재미도 들이고 ‘좀 하네’ 이런 소리도 듣고 이러던 중이라서 이것 말고는 내가 뭐를 잘하지? 이런 생각이 막연히 든 거예요. 멘토 같은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네가 왜 그런 걸로 그만 두냐. 그러지 마라, 절대로’ 그렇게 얘기해줬어요. 그때 제가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내가 다 잘한 게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누가 봐도 베스트로 잘하고 이런 애는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그게 약간 결혼한 주부들을 위한 살림지인데, 편집장이 된 후배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고, 나는 그런 부분에서는 내가 좀 결격이었나 보다’ 라고. 지금도 생각해 보면 10년 하고 그런 시간을 갖게 된 것이 아마 다른 기자들은 그런 경우가 없었어요. 제가 아마 유일할 거예요.

대학원은 어디로?

고대 언론대학원이요. 알고 보니 제가 의외로 포럼하고 세미나, 컨퍼런스 그런 것을 좋아하는 거예요. 보고서를 위해서 일부러 세미나 이런 데도 가고요. ‘트렌드’와 관련한 보고서를 써야 되는데, 삼성경제연구소의 어떤 연구원이 책을 냈거든요? 그래서 딱 보고 바로 전화했어요. ‘나 리포트 써야 되는데 만날 수 있냐’ 가서 취재를 하고. 그때 그것 때문에 제가 마케팅에 대해서도 살짝 눈을 뜬 거예요. 왜냐면 기자를 계속 안에서 하다 보면 외부적인 환경을 대한 의식이 별로 안 돼요. 그런데 제가 6개월 간 발을 확실하게 뺐잖아요. 그래서 제가 만든 잡지에 대한 것도 생각을 하게 되고, 독자를 의식하고 뭔가를 한다는 게 중요하다라는 것을 그때 좀 깨달은 것 같아요.

그동안 인터뷰한 리더들이 정말 목적의식적으로 내가 저 자리에 올라야겠다 이런 게 아니어서 아쉬워요.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조직은 여성에게 ‘기회를 준다’는 거에 의미를 두는 정도인 것 같아요. ‘원래 다 남자였는데 그래도 네가 최초의 여자야’ 마인드가 딱 그 정도인 거예요.

그래도 예전보다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특히 여성 중심의 조직이었잖아요. 다 경쟁자가 여성이었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위에 있는 결정자는 다 남자였어요. 인터뷰하는 분들 대부분이 기혼자일 거예요. 애도 키우고 정말 투쟁의 삶이잖아요. 그런데 그러기에 바빠서 멀리 비전을 세워 놓고 ‘내가 20년을 이 직장을 다니겠어. 나는 롱런할 거야’ 이게 아니고 정말 내 앞에 있는 이것이 재미있고 좋아서, 애 키우고 힘들지만 그냥 열심히 하겠다, 이러다 보니까 올라간 거죠. 아직까지 그런 것 같아요. 남자들이 의사결정자인 조직에서는 여자가 경쟁의 대상, 견제의 대상이 된다고 치면 조직에서 살아남기가 힘든 거죠. 저 여자는 동기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투사다 이러면 어쩌면 그 전에 견제가 더 세게 들어왔을 수도 있어요. 아직까지 우리 세대는 그렇다고 봐요. 남자 후배와 여자 후배가 같이 있다고 쳤을 때 그냥 쟤는 ’이 정도까지는 커도 되겠어’ 라는 나름대로의 리미트(limit)가 딱 있는 거죠. 그러니까 너무 자기의 야망과 장기 플랜을 드러내면서 일을 하기에는 일단 첫 번째는 생활 환경적으로 우리가 받침이 안 되고, 둘째는 그런 남성중심의 조직적인 한계가 있는 거죠.



“킵 인 터치(keep in touch)”

나만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있다면?

저는 제일 많이 하는 게 트렌디한 도구를 많이 활용하는 거에요. 예를 들면 지금은 카톡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룹핑도 다 카톡으로 하고요. 그 다음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직접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한테도 굉장히 소식을 자주 전하는 편이에요. 저는 ‘킵 인 터치’(keep in touch)라는 말에 딱 맞게 꾸준하게 사람들한테 안부성 연락을 참 많이 해요. 그리고 뭔가 제가 아는 사람들끼리인데 교집합이 될만한 사람들을 많이 연결해 줘요. 그래서 거기에서 또 모임이 생겨서 카톡에 모임방이 하나 생기고 그런 식으로. 저는 약간 가지치기를 잘해요.

여성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게 ‘라고 일반적으로 얘기하잖아요. 그런 편이신가요?

제가 좀 무서울 때는 무섭게 해요. 직원들이 절대로 만만하게 보지 않게. 뭔가 힘든 말이나 중요한 것을 할 때는 객관적인 톤에다가 목소리도 약간 깔고, 그 친구한테 존칭을 최대한 쓰면서 정확하게 얘기를 해요. 오히려 더 공손하게. 그럼 모두들 알지요. 저렇게 얘기하는 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어야 된다는 것을.

조직 간에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저희 회사가 최근에 조직개편을 했어요. 제가 조직개편을 했지만 본인들은 납득이 안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역할이 서로 혼재가 되어 있던 것들이 있어서 제가 그 업무 분장을 다 해 줘야 되기 때문에 인사담당한테는 각 팀을 다 면담을 따로 해서 생각하는 안을 올리고, 내가 그걸 참고해서 결정을 하겠다고 했죠. 조직 간의 갈등이 당연히 있죠. 저한테 들어와서 이렇고 저렇고 얘기하고 심지어 소리지르고 싸운 적도 있고 하죠. 그러면 저는 당사자들 얘기를 일단 다 들어요. 우선은 끝까지 듣고요. 언제든지 보면 그래도 상대적으로 옳은 데가 있고 아닌 데가 있거든요. 그러면 저는 그냥 있는 그대로 그것을 얘기해 주죠. ‘네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점은 회사에서 생각하는 것과 너무 갭이 있어. 그래서 이 부분은 이렇게 해야 돼.’ 저는 그냥 다 대체로 대화로 풀어요. 얘기를 다 듣고 교통정리를 하죠. 만약에 3자 대면이 필요하면 모아놓고 얘기를 하죠. 저는 뭐든지 뒤로 거래하는 것보다는 클리어하게 공개적으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그렇게 아예 다 같이 당사자들 있는 데서 정리를 해 주죠.

한마디로 정면돌파형이었네요?

예, 조정을 해서 관철을 주로 시켰죠, 제가. 물러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게 요령이라는 게 참 필요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무대포로는 절대 하면 안 돼요. 얘기하고 만약에 여기다 얘기해서 안 된다 그러면 저는 상위 결정자한테 가서 얘기하죠. “이렇게 꾸준히 얘기했지만 안 된다고 하는데, 이러시면 저희 이거 책 만드는 데 지장이 있으니 그냥 대표께서 결정해 주십시오.”

고민의 내용 중의 하나가 정말 일만 퍼포먼스를 내는 게 아니라 또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주변 사람도 만나고 관리해야 되는 점이에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갈수록 생각이 일만 잘한다고 더 꼭대기로 올라가는 것 같지 않아요. 책에도 보면 써 있잖아요. 너의 윗사람이 빛나게 해 주어라. 그게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왜냐면 얘가 나를 치고 올라올 애는 아니다, 얘는 내가 더 잘 되는 거에 굉장히 밑거름이 될 애다, 이런 것을 남자들은 되게 많이 원해요. 제가 그게 편견일 수도 있는데. 뭔가 자기한테 로열티가 있다는 것 때문에 후배를 밀어주는 거죠. 기자들도 보면 그런 것을 잘하는 애가 있어요. 예를 들면 출장 결제를 똑같은 기자가 올리는데, 어떤 애 거는 초스피드로 돼요. 왜냐하면 평소에 자기가 무슨 선물 같은 것을 받으면 그 담당 언니를 하나씩 주는 거에요, 자기 팀에만 주는 게 아니라. 점심을 먹어도 자기 팀 기자하고만 먹는 게 아니라 한 번씩은 경리 담당하고도 먹고. 그게 사실은 그렇게 큰 게 아닌데 다른 애들이 안 하니까 돋보이는 거잖아요. 자기한테 그래도 관심을 보여주는 거잖아요. 사람과의 관계는 관심으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한다고 보거든요. 조직에서 자기를 별로 하찮게 생각하는 사람하고 자기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과는 관계의 질이 다르죠.

여성 리더로서 어려운 점이 혹시 있었나요?

원래 그룹이라는 데서는 그룹 전체의 시각에서 봐야 되는 거죠. 그게 기본은 다 그냥 남성 위주예요, 아직은. 제일 큰 문제는 뭐냐하면 그들과 굉장히 정보 공유가 끝까지 안 된다는 거. 그들의 문화와 똑같이 할 수 없는 거. 술을 먹고 사우나 같이 간다, 이런 거 못 하는 거. 사실은 그런 굉장히 원초적인 것을 같이 하면서 끈끈해지는 게 크다는 것을 제가 이 일을 하면서 알게 됐거든요. 그래서 제가 처음에 대표 됐을 때는 그런 것을 막 카피하려고 했었어요. 나도 한 번 술도 막 먹고. 그런데 그런다고 해서 저의 색깔이 나오지도 않고 그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요즘은 그렇게 안 하죠. 그렇게 한다고 더 되는 것도 아니고 내 방식도 아니니까. 나는 그냥 내 스타일대로.

그 스타일이 어떤 거죠?

저는 공연에 초대도 해서 같이 보기도 하고, 광고주하고 그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누군가를 같이 만나는 자리를 만들기도 해요. 혼자 만나기 불편하지만 남자들이 3명 만나자고 하면 또 만나요. 왜냐면 나만 만나는 게 아니거든요. ‘누구도 부를까요?’ 하면서 만나고 있으면 또 불러요, 심지어는 더. 그렇게 제가 하고 있죠.

회사 대표가 된 지 4년 째이신 거죠?

예, 제가 어쨌든 간에 편집장에다 대표가 된 것이 첫 케이스라고 다들 그러니까 저보다 먼저 일했던 분들이 ‘네가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하시거든요? 제가 그런 말에 플러스가 됐으면 좋겠어요. 기왕에 하는 거 잘하고 싶어요. 열심히 하고 싶구요. 예를 들어서 ‘편집장 출신 여자 대표 시켜 보니까 역시 꽉 막혀서 영업도 안 되고’ 이러면 그 다음에 또 기회가 안 오잖아요. 그러니까 정말 제가 그런 소리 안 듣게 하고 싶어요. 요즘 ‘후배’라는 단어를 자꾸만 떠올리게 되요. <윈> 포럼에서 지금 멘토링하는 것처럼 잡지를 통해서든 개인적으로든 많은 후배들에게 더 큰 기회와 세상이 열릴 거라는 것을,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이 어떻게 더 스마트하게 살아야 되는지를 많이 가르쳐주고, 긍정의 메시지를 많이 줄 수 있는 그런 걸 하고 싶어요.

리더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멘티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신다면?

어떤 분야에서 리더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본인이 그 동안 해 왔던 것에 대해 인정받는 것이라고 봐요. 리더가 되면 확실히 권한과 책임이 커지는 것이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어쨌든 일에서 자기의 색깔을 넣으면서 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리더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더 많이 리더가 됐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리더라는 것은 꽤나 섹시한 포지션인 것 같아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