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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의 톡톡

“A를 요구하면 A+를 준비하라”

조화준 / BC카드 전무

지금의 조화준 전무님이 있게 된 커리어를 간략하게 말씀해 주시겠어요?

저는 79년에 신방과를 졸업했어요. 원래는 방송국 PD를 하고 싶었는데, 당시는 여자 PD는 아예 안 뽑았어요. 아나운서만 뽑더라구요. 저는 아나운서에는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공부를 하게 됐고, 미국에 사회학 공부를 하러 갔어요. 공부하면서 남편을 만났고 결혼을 하게 됐어요. 당시 저에겐 진로와 관련해 고민이 많았어요. 사회학 공부를 계속 해야 할지, 또 미국에서 살게 된다면 뭘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을 했죠. 일단 미국에서 살게 된다면 외국인이고 하니까 자격증을 갖고 덤벼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CPA를 하게 된 거에요. 먼저 MBA를 하고, CPA 시험을 봤습니다. MBA를 하고 나서는 위스콘신 주정부에서 일을 좀 했어요. 그리고 박사과정에 들어갔죠. 92년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남편과 제가 같은 지역에서 자리를 잡아서 일하기가 쉽지 않겠더라구요. 아이도 있었구요. 그래서 일단 한국에 들어오기로 했어요. 설사 주말부부를 하더라도 가까우니까 가능할거라 생각했죠. 학교에 지원을 많이 했는데, 여자라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다행히 제가 전공이 경영학이라 그래도 기업에서 요청이 있었던 거죠. 삼일회계법인에서 컨설팅을 하게 됐구요, 컨설팅이라는 것이 제 표현으로 하면 ‘훈수 두는 거’ 잖아요. 근데 훈수 두는 거 말고 직접 뛰어들어서 내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KT 연구소로 입사를 했죠.

임원이 되는 데 중요한 경력이나 역할을 하신 게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어떤 커리어가 임원이 되는 길일까를 고민하기 보다는 ‘이 일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고민했어요. 그래서 해야 된다고 판단이 서면 물불 안 가리고 일을 했어요. 사실 일을 할 땐 부장 때가 좋은 것 같아요. 왜냐면 부장 때는 내 손으로 휘저으면서 일을 하는데 임원이 되고 나서는 입으로 하는 일이 많잖아요(웃음). 제 성향이 그래서 그런지 저는 일이 진짜 할 만한 일인가에 대해서는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던 것 같고요. 일단 판단을 했으면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열심히 한 데에는 뭘 몰라서 그랬던 것도 있어요. 무슨 얘기냐 하면 그때만 해도 KT는 정통부의 규제를 받고 있는 때였거든요? 눈에 보이지 않는 관행 같은 게 있었어요. KT 부장이면 정통부의 사무관 이상은 잘 못 만나고 그런 건데, 사실 저는 조직 생활을 늦게 시작한 셈이잖아요. 그 다음에 박사라는 타이틀이 있으니까 개념 없이 서기관이고 국장이고 가서 그냥 할말 다 하고 던지고 오고 그랬죠(웃음).

그 당시 기업에서는 여성을 부장까지 혹은 임원까지 승진시킨다는 생각을 안 하는 시점이기도 했고, 또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제외시키는 경향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승진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제 생각에 일은 제대로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예를 들어 ‘보고서 좀 써 와라’ 그런 게 있으면 제가 써낸 게 샘플이 될 정도였거든요. 또 이런 측면도 있을 거에요. 나 같은 경우는 조직에 중간에 들어간 거잖아요. 조직에 처음부터 있으면 타성이 붙을 수밖에 없는데, 타성이 붙는다는 건 생각을 좀 안 한다는 얘기잖아요. 판에 박힌 생각만 하는 거죠. 게다가 저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기도 했고, 미국에서 일도 했고요. 그러다 와서 보니까 달라 보이는 게 있는 거죠. 항상 궁금한 것이 많고, 불만도 많고, 새로운 생각도 많고 그랬던 거죠. 늘 생각을 하며 살지 않았나 싶어요. 좋게 말하면 조직의 활력소 역할을 한 거죠.

KT는 보수적인 조직이다 보니 기존의 남성직원들과의 관계에서 갈등도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결해 나가셨는지요?

보스를 잘 만났어요. 부장 때 제 보스가 굉장히 합리적인 분이었어요. 예를 들어 상사들이 있는 자리에서 제가 좀 까칠하게 굴어도 그럴 만한 상황이면 충분히 인정을 해줬어요. 제 ‘까칠함의 타당성’을 제 보스는 충분히 이해하고 인정해주었으니까요. 하루하루 ‘내가 진짜 이거 해야 돼 말아야 돼. 내가 이러고 살아야 돼?’ 이런 와중에 ‘내 상식과 저 사람 상식은 비슷한 것 같다’는 믿음이 생긴 보스를 만난 거죠. 그 분은 커리어 초기에 ‘내가 실수하고 있는 건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게 해 주셨어요.

현재 조직 내에서 내가 이 말을 해야 될까 말아야 될까 고민하는 여성매니저들이 있다면 어떤 얘기를 해 주고 싶으세요?

물론 당장은 하고 싶겠지만, 일단은 참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예들 들어 “쟤는 아무 때나 까칠하게 굴어”가 아니라 “쟤 말은 들을 만 해” 라는 게 설 때까지는 참아주는 게 필요해요. 그 다음에 자기가 그런 정도의 신뢰와 위치가 확립이 됐다고 생각되면 그때는 목소리를 내도 되죠. 그런데 그 목소리를 내는 것도, 자기가 참는 동안에 배워야죠. 똑같은 얘기를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참는 동안에 그 방법을 배우고 나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해야죠. 그때는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것보다 목소리를 내는 것이 낫죠. 저는 지금도 같은 임원들 사이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걸 들이받아? 지금? 만약에 지금 안 하면 또 다른 기회가 언제 있지?” 이런 생각을 하죠. 그래도 한 번은 기본으로 참아주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럼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가 언제일까요?

어느 정도까지의 확신이죠. 자신감이요. 객관적으로 내 말이 일리가 있고 이게 조금 먹히는 것 같다 하는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조금 참아주는 거죠. 아직은 우리 여성들이 마이너리티잖아요.



“기회는 준비 된 자에게 온다”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갈등과 어려움을 견딜 수 있었던 성향 같은 것이 있었나요?

저는 생각보다 제 마음대로 살았어요. 우리 때 여자애 혼자 유학 안 보내거든요. 저는 혼자 갔으니까요. 집에선 물론 말렸지만, 전 우겨서 갔어요. 몰라서 무식하기도 했고 그러니까 용감도 했어요. 내가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이유는 이게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지, 누가 나를 떠밀어 넣지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그건 오로지 내가 감당할 몫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 때는 여자들에게 일은 옵션이지 필수가 아니었잖아요. 우리가 일 잘 하고, 또 여성 리더십에 관심을 갖고 하는 건 다 이런 맥락 아니겠어요? “나 때문에 내 후배가 ‘여자는 안 되겠어’ 소리를 듣지는 말아야지” 하는 거죠.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을지도 모르는데 나 혼자 여기에 등짐을 지었네요(웃음).

전무님의 가치 자체가 지금의 전무님을 만든 것 같은데, 어떤 가치를 갖고 선택을 하셨는지요?

어떤 가치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찾아지면 열심히 한 것 같아요. 저는 특별히 커리어에 대해 부담감을 안 갖고 살았어요. 박사 과정도 당시 상황에서 제가 지원했던 일 중에 조건에 맞아 하게 된 거죠. 그런데 그때 준비를 했으니까 이 기회가 온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준비되지 않았다면 기회는 오지 않았겠죠.

유학 후 학교 쪽을 찾다가 기업으로 오게 되었을 때 어떤 판단으로 결정하셨는지요?

연봉은 아니었던 것 같고요. 삼일회계법인에서 KT로 옮기면서 연봉은 깎여서 갔으니까요. 삶의 질을 좀 생각했던 것 같아요. 현실적인 발란스라고 할까요. 제가 KT 연구소에서 둘째 아이를 낳았어요. 우리 나이로 39세에 낳았거든요, K연구소니까 그 나이에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KT 문화나 복지 이런 것들이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차별을 두지 않았어요. 만약에 그때 제가 현업 부장이었으면 절대로 못했을 것 같아요. KT의 문화 속에서 둘째를 낳고 나선 이직의 갈등은 없어졌어요.

상사와 불편한 적은 없으셨어요?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그것으로 승진에 피해를 보시지는 않으셨는지요?

당연히 있죠. 서로 상대가 있는 게임을 하게 되면 어쨌든 이기고 지는 게 생기잖아요. 나는 내가 이겼을 때 얼른 이긴 것만 인정하고 빨리 이 사람이 덜 상처받았으면 싶어요. 그런데 내가 힘들었던 보스 한 분은 이렇게 자기가 이겼을 때 확인사살까지 하고 ‘너 분명히 나한테 진 거야!’ 하는 걸 봐야지 속이 시원하신 분이었어요. 남자 분들 중에 은근히 그런 분들이 많아요. 그 분이 유난히 그런 게 심했는데 그때 아주 힘들었어요.

그런 힘든 상황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셨나요? 갈등을 컨트롤하는 전무님만의 노하우는 무엇이었는지요?

주변에서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라고 하더군요. 저는 다른 분야에 있는 제 대학 동기들과 수다로 많이 푼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게 사실은 사람에 대해서 분노를 하는 거란 말이에요. 저는 거기다 그렇게 에너지를 쓰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어차피 조직이니까 마음대로 안 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 분노에 너무 자기를 갉아먹게 하지 말고 자꾸 다른 일을 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어차피 견뎌야 될 시간이기 때문이에요.



“이 일을 왜 시켰지?”

전무님께서 여성 리더들에게 ‘남보다 한 발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생각을 해야 된다’고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장기나 바둑을 둘 때 한 수를 먼저 읽는 것이 중요한데,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대개 조직생활을 시작할 때 시키는 일을 하게 되잖아요. 시키는 일을 할 때 저 사람이 이 일을 왜 시켰지를 한 번만 생각해 보라고 요구해요. 예를 들어서 ‘올해 당기순이익을 뽑아와 봐’ 라고 얘기를 하면 보통 상장 회사의 당기순이익 수치는 금감원의 ‘다트’라는 시스템에 들어가면 누구나 뽑아올 수 있어요. 그런데 ‘상사가 왜 나한테 이걸 시켰지?’ 라고 생각을 하면, 이 사람이 당기순이익뿐만 아니라 영업이익도 관심이 있을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상사가 나한테 이 일을 왜 시켰나를 생각하면 상사가 요구한 A 말고 A+ 를 가져다 줄 수 있거든요. 그러면 거기에서 차별화가 되는 거 같아요. 예를 들면 BC카드의 당기순이익을 뽑아오라고 했는데, 이 사람이 이 일을 시킬 때는 카드업계의 당기순이익이 궁금했을 수 있거든요. 그러면 요즘 잘 나가는 현대카드도 한 번 볼까? 해서 같이 가져가는 것하고, 그냥 당기순이익만 달랑 뽑아오는 것 하고는 차이가 난다는 거죠. 그것은 물론 보스가 보는 것으로도 차이가 나지만, 사실 일 하는 사람이 자기 내공을 키우는 프로세스이기도 하거든요. 왜냐면 자기도 어느 날은 시키는 사람이 될 것이고. 그 훈련을 하지 않으면 맨날 거기서 끝이죠. 그러니까 과장일 때까지 아주 잘하다가 부장 되면 헤매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요. 그래서 훈련이 필요합니다. 부장이 되고 이사가 되면 사장의 시야까지 생각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 마인드는 어떻게 갖게 된 것인가요?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깨달은 것 같아요. 미국에서 공부할 때 논문을 다듬는 과정에서 심사위원 네 분의 요구사항을 맞춰야 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A교수와 B교수가 서로 다른 얘기를 하기도 하거든요. 그런 경우 두 사람을 만족시키지는 못해요. 그러면 ‘어떻게 만족시켜야 되나. 이 분이 왜 그럴까?’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해답이 묘연해지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이 교수도 100% 자기 뜻이 반영되기를 원하는 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기도 그 과정을 겪었을 테니까요. 나중에 보니까 교수님들이 자신들의 의견이 100% 반영이 되는 것을 보기 보다는 교수와 내가 만나면서 얼마나 고치려는 노력을 했느냐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A라고 얘기할 때 그 의도를 읽는 거라고 할까요. 그것을 깨달은 이후로는 계속 그런 질문을 던지면서 윗사람의 의도가 무엇일까를 늘 고만하면서 업무를 진행했고 많은 성과를 얻었어요.

KT는 오래된 조직이라 나이 많은 남자 직원 분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려웠던 적이 있었는지요?

실제로 그분들이 조직에서의 노하우는 나보다 많이 알고 있으니까요. 진심으로 존중을 했죠. 노하우 많은 사람이면 거기에서는 나한테는 선배예요. 그것은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테면 지금 같으면 이렇게 얘기할 거예요. “김과장 그거는 어떻게 해야 되는데?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맞아? 그게 맞는 거야?” 이렇게 대놓고 물어보면요 거짓말 안 해요. 그러고 시간을 줘서 이 사람들이 나를 믿게 해야죠. 내가 이 사람한테 괜찮은 사람이 됐구나 라는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는 예민하게 하지 않는 게 좋죠. 이게 사실은 처음의 기싸움 이거든요. 모른다고 하는 사람한테 못되게는 안 굴어요. 조직에서 경험이 많게 되면 그래서 내가 어느 만큼 안다고 하면 그쪽에서도 무시하기가 힘들죠.

전무님만의 네트워크 관리 노하우가 있으신지요?

상대방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제가 모시던 보스한테 배운 것 중 하나인데, 내외를 불러서 저녁을 함께 하며 인사를 하는 거에요. 나중에 주말에 일 할 거 있을 때 전화를 하면 집에서 남편이 받잖아요, 안면이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쉽게 해결이 돼요. 부장 시절에 그렇게 많이 했어요. 또 제가 가끔 어디 원고 쓰고 받은 돈 있으면 그걸로 밥을 사기도 해요. 부서가 조금 커지면서는 매달 생일파티를 했어요. 그 달에 생일인 사람들과 같이 식사하고 축하해주죠. 또 제가 책을 사서 보고 난 후에는 ‘누구한테 맞을까?’ 미리 생각해서 선물로 줘죠. 책에다 로또 복권도 사서 넣어주기도 하고요. 대개 그런 것을 하려면 비서한테 파일이 하나가 생성 되거든요. 거기엔 아이들의 수능 날짜 같이 챙겨야 할 일들이 체크되죠.

여성들은 가끔 여성 상사에 대해서 리더로서 인정하지 않는 그런 경우가 좀 많더라고요.

저도 나이를 많이 먹다 보니까 저보다 나이 어린 보스도 모셔 봤는데, 그건 존중해야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김연아나 박지성 같은 친구가 나이는 어리지만 굉장히 대단한 내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스트레스풀한 상황에서 견딘 그 내공은 내가 안 겪어본 부분이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존중을 해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상사가 되기까지에는 그만한 내공이 있는 것이죠.



“나도 틀릴 수 있다”

리더십의 성공 사례가 혹시 있으세요?

성공사례라기 보다는 내가 갖고 있는 리더십의 철직을 실현하려고 노력해요. 뭐냐하면 나도 ‘틀릴 수 있다’라는 것을 머릿속에 넣고 살아야 된다는 거에요. 보통은 나이 먹을수록 그게 잘 안 돼죠.(웃음) 제가 우리 고등학생 아이를 보면 아직은 걔가 내 손바닥에서 노는 것 같거든요? 대부분은 그게 맞기는 해요. 그런데 어떨 때는 내가 오버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잘 못 생각을 하고 있는 거면 아이한테 “미안해. 엄마가 오해했어. 엄마가 잘못했어” 얘기를 쉽게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직원들한테도 마찬가지죠. 그때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할 수 있어야지요.

또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마음으로는 ‘이건 이렇게 돼야 되겠군’ 하더라도 웬만하면 관계 있는 사람들을 다 불러요. 다 불러서 “우리가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해서 한 번 의견을 공유하는 거죠. 그러는 와중에 다른 일들에 대한 얘기도 나오거든요. 또 중요한 건 일을 시킬 때 직원을 믿어주는 거죠. 내가 조금 먼저 계획을 해 놓고 그냥 놔둬보는 거에요. 놔둬보고 하는 데까지 해서 갖고 온 다음에 그 다음 얘기를 하자고 그러죠.

일종의 트레이닝을 하시는 거네요?

그렇죠. 먼저 쉬운 일부터 시켜보는 거죠. 이래도 저래도 괜찮은 일들 있잖아요. 이를 테면 아주 주니어라면 봄에 야유회를 가는데, ‘프로그램 한번 짜봐’ 하는 거죠. 야유회 가서는 누가 다치지만 않으면 되는 거니까요. 나중에 가져오면 이거는 다시 해 봐 이렇게 하는 거죠. 중요한 일이면 부장쯤 정도 되면 거기는 믿고 맡겨도 되죠. 그 대신 시간 여유를 줘야죠. 믿고 맡긴다고 해서 내가 끝까지 안 본다는 얘기는 아니거든요. 중간에 다그치치 않는다는 거죠.

믿고 맡겼는데 잘 안 됐어요.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러면 다시 해 갖고 와야죠. 그리고 안 믿는다기 보다는 그것은 너한테 안 맞나 보다 하죠.

전무님만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있으세요?

사실 금융기관 사람들이 좀 터프하거든요. 저에게 대놓고 “약주 좀 하시겠네요?” 그런 질문들을 받죠. 그러면 술을 많이 먹는다고 그럴 수도 없고, 못 먹는다고 그럴 수도 없죠. 그러면 저는 “왜요?” 이렇게 되는 거에요. 기본적으로 까칠한 게 있긴 한 거죠. 제 캐릭터가. 그 까칠한 방식은 커뮤니케이션의 단점이죠. “조금해요.” 그렇게 얘기하고 넘어가도 되는 거죠. 근데 그게 한편에선 강점이기도 해요. 명료한 부분은 있어요. 꾸미려고 하지 않고 정직한 부분이 있는 거죠. 정직한 거는 장점이에요. 그런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한테는 굉장히 큰 경쟁력이 될 수 있겠죠. 그것을 어떻게 어필하느냐는 또 숙제지만.

사내 네트워크는 어떻게 형성하셨어요?

열심히 밥 먹고 술 먹고 그랬어요. 그것도 그런 것 같아요. 사내 네트워크라는 게 의도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내 직원들하고 스킨십이 자꾸 그러면 내 직원들하고도 가까워 지는 거고. 사내 네트워크라는 게 다른 일 때문에 회의를 하고 그러면 그 만난 사람들하고 그 회의로 끝내지 않고 예를 들면 오늘 이런 것 때문에 고마웠어요. 그럴 수도 있고요. 항상 그런 걸 챙기면 그냥 이렇게. 점심은 먹잖아요. 저는 가능하면 점심 열심히 먹고, 그 다음에 필요하면 저녁도 먹고. 아이에 대해서도 여자들도 그 생각은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웬만한 대기업은 부장만 돼도 억 정도 받을 텐데, 그런데 그런 사람을 남자 직원이고 여자 직원이 있을 때 쟤가 맨날 집의 일을 고민을 한다고 그러면 사주 입장에서는 짜증날 수 있어요. 쟤는 그거 안 하고 여기다 매진을 하는데. 그러니까 내가 조금 아는 친구들한테는 돈으로 막을 수 있으면 돈으로 막으라고 얘기를 해요. 아이가 크는 거는 짧은 시간이에요. 내가 가진 타임을 쓰는 데 우선 순위를 두고, 돈으로 막을 수 있는 거, 남 시켜도 되는 거 그거는 다. 그러니까 내가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어떤 엄마이고 싶으셨어요?

“우리 엄마 괜찮은 사람이었어”라는 말 듣고 싶죠. 속상한 일이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와서 얘기할 수 있는 엄마. 우리 친구들이 나한테 표현을 그렇게 하던데요. 애한테 끈을 좀 길게 갖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예를 들면 그런 거 같아요. 콜라를 안 사 먹이는 엄마들이 있어요. 그런 애들이 엄마만 없는 데 가면 더 많이 마시거든요. 왜냐면 없을 때 마셔야 되니까. 그러니까 애들을 그냥 놔두고 키웠어요. 완전히 방임으로 키웠죠. 믿어주면 하겠지 그런 생각을 했어요. 공부하라는 말도 안했어요. 무슨 일이 생길 때 “엄마 생각에는 이랬으면 좋겠는데, 니가 먼저 해 볼래?” “니가 그게 싫으면 먼저 니 식대로 해 볼래?” 그런 기회를 주려고 애를 썼어요. 소비가 큰 경우는 얘기를 하죠. 요즘 애들이 물건 귀한지 모르고 크잖아요. 예를 들어 운동화를 또 사겠다고 하면, “1주일 동안 계속해서 사고 싶으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 주로 그렇게 얘기를 하는 편이에요. 그러면 반 이상은 없어져요. 다르게 얘기도 하죠. “너 그렇게 다 사고 싶으면, 엄마도 빨간 차도 갖고 싶고 노란 차도 갖고 싶은데, 엄마도 차 그렇게 다 살까?”

성공하고 싶어하고 여성 리더가 되고 싶어하는 멘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잘 견디라고 하고 싶어요. 힘든 것도 좀 견뎌라. 지금까지 견딘 것에 비하면 어쩌면 훨씬 더 강한 것이 올지 모르는데, 그렇더라도 지금까지의 내공을 모아서 견뎌라.

견디면 뭐가 보일까요?

보이죠. 그 다음이 보이는 거예요. “쟤가 왜 저러나” 그러면 거기에서 접을 수도 있고, 회사를 옮길 수도 있지만, 한 번 더 견뎌보면 그 다음이 보이거든요.